유교 속의 여자, 유교 밖의 여자


아마존을 누비며 끝없이 연구 활동을 했던 레비스트로스, 그의 연구의 일관된 질문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였다.
그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원시의 자유스러운 창조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으면서 가장 순수한 상태로 존재하는 인간들의 모습, 본래적으로 부여받은 삶에 대한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순수의 세계, 우주의 시작 때 부여받은 삶의 순수.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모습을 모두 잃고 말았다.
문명이 현란한 불빛이 밝아질수록 우리의 눈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슬픈 일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줄 수 있는 원시의 정신을 찾기 위행 아마존을 해맸던 레비스트로스의 몽상처럼, 우리는 조선시대의 높은 담들을 기웃거리며 세 여인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그 여인들은 다름 아닌 신사임당과 황진이 그리고 춘향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유교는 이 세 가지 모델만을 제시하고 여인들에게 그 틀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 세 여인의 이미지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 아내 그리고 연인을 만날 수 있다.

신사임당. 모범적인 한국적 규수의 상징. 조선의 학자 율곡 이이를 낳아 기른 어진 어머니로, 슬기로운 아내로, 지극한 효녀일 뿐 아니라 그림, 글씨, 문자에도 뛰어난 여인으로 묘사되는 인물, 지금도 선생님들의 입을 통해서 여학생들이 사표로 삼도록 추천되는 인물.
이런 신사임당이 그린 풀벌레 그림에 대해 약 200년뒤의 사람인 신정하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붓을 들어 찍은 한 점 한 점, 하늘의 조화를 빼앗았구나. 고이 앉아 종이 위에 붓을 던질 때, 단지 그림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리, 옛날 문왕의 어머님이 시를 지어 읊은 것을 본따 그려내니 소리 없는 시로세’

작품평이야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니 이 부분에 대해 왈가왈부하고픈 마음은 없다.
다만 독자들이 한번 기회 있을 때 나름의 평을 해보기 바란다.
하지만 ‘문왕의 어머니’는 눈에 거슬린다.
그건 아직도 우리 사회 문화예술계 여기저기에 튼튼하게 남아 있는 '선생님 제자시니 어련하시겠어요?‘ 식의 평론 아닌 평론과 맥을 같이 한다.

‘문왕의 어머니’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바로 중국의 은나라를 정벌하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아버지 문왕의 어머니다.
문왕은, 그러니까 정통적인 원시 유교의 문을 연 주나라의 초대 왕으로 유교에서는 공자만큼 껌뻑 죽는 인물이다.

바로 그 인물의 어머니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멀고 먼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유교 문화의 단점 중의 하나는 이렇듯 조그만 끈이라도 있으면 붙들고 매고 늘어지는 견강부회, 쉬운 말로 억지다.

젼형적인 유교의 여인상은 무엇인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르는 법도를 평생의 의무로 생각하는 것이 유교가 말하는 아름다운 여인상 아니던가?

신정하의 화평은 결국 신사임당의 그림에 대한 평이 아니다.
그녀의 인품과 그녀에게 유교적이고 도덕적인 점수를 높이 주고 싶은 심정이 그림을 통해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작품을 인격과 결부시키는 것이 동양적 그림과 글씨 품평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인격이라는 것은 왕왕 ‘누구의 제자’이냐에 따라 결정되곤 하는 이상한 잣대가 아니던가?
이쯤 되면 내가 왜 신사임당을 조선시대의 대표적 여성의 이미지로 추천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왜 학교에서 끊임없이 여학생들의 뇌리에 집어넣고자 하는 한국의 여인상이 되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사임당은 정말 당시의 유교 문화가 요구했던 ‘표본’으로만 살기를 원했을까?
그녀는 유교적 인간의 ‘표본’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애착이나 향수가 없었을까?
그토록 영특했던 여성이라면,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 조선시대를 대표할 만한 피비린내 나는 당쟁들을 목격하면서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까?
우리는 또 한 번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역사와 기록마저도 서슴지 않고 왜곡하는 유교 사회 사대부들의 뜻깊은 배려(?)가 다시 한 번 고려되었는지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심청이 역시 신사임당 계열의 여자로 볼 수 있다.
심청이에 대한 비난이 쉽지 않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조선, 한국의 여인상을 결정짓기 위한 계산적 인물이었다는 점을 밝혀두지 않을 수 없다.

황진이에 비하면 춘향이는 웃기는 여자다.
매는 매대로 맞고, 결국은 한 남자에게로 되돌아가는 어절 수 없는 조선 여인의 한계를 온몸으로 연기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는 폭력당하는 여성의 전형이 바로 춘향이다.
아무리 맞아도 결국 남자의 폼에 안기는 춘향이, 변사또와 이도령은 사실 동일한 인물이다.
오늘날에 한국 가정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패고 안아주기를 반복하는 사내들의 이중적 성격이 분화되어 이루어진 인물이 바로 변사또와 이도령이다.
문화적으로 볼 때는 한통속인 것이다.

이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여성을 여성답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남성으로부터 독립되고, 성적인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해 수시로 섹스 파트너을 바꾸어보고, 담배도 꼰아 피워보는 것이 여성을 여성답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일까?
정치적으로 안배되는 장관 자리 몇 개가 여성도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될까?
그건 역시 변변한 수영장 하나 없는 동네에 살면서 아시안 게임 수영 금메달리스트를 향해 박수를 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만큼 공허한 것이 아닐까?

여성을 여성답게 할 수 있는 열쇠는 이 원시의 순수 속에서 ‘여성’이라는 모델로 가공하기 시작한 틀을 찾아내 부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남성의 모럴로 특징지어지는 유교의 문화적 틀을 깨뜨리는 데서 해답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발랄하고 건강했던 원시의 순수한 인간을 재능도, 자유도, 목소리도 없는 ‘여성’으로 만들어버린 일방적 계약을 파기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유교 문화의 굴레 속에서 신음하던 자신들의 재능과 자유와 아름다움을 다시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여성이 의지해야 할 자리는 폭력의 변사또도, 순정의 이도령도 아니다.
여성 자신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자유스러움에 있다.
신은 모든 자유분방한 아름다움을 여성 안에 감추어놓았다.
여성에게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주었고, 자녀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을 심어 두었고, 남성들의 창조력을 촉발시킬 수 있는 매력을 넣어두었다.
때문에 모든 남성들은, 그가 아무리 둔감하고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한 여자를 사랑하는 순간부터 돌변하기 일쑤다.
숨겨졌던 모든 에너지가 일순에 분출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기 일쑤다.

유교 문화 속의 사내들이 시커먼 먹물 속에서 헤매고 만 이유는 분출하는 여성들의 매력과 아름다움으로 적절한 자극을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성이란 힘과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그것도 여럿을 살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남성들이 창조력은 점점 무디어져갔고 눈은 점점 어두워갔던 것이 아닐까?

일본사회의 전통적인 성개방 풍조가 일본 문화의 개방성과도 연결되어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단지 윤리적 잣대만으로 묵살해서는 안 된다.

성의 개방 문제를 윤리적 측면에서 풀어야 하는 당위성은 인정해야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여성을 그 문화적 유배지에서 풀어 사회로 진출시키던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사회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현상을 그저 우연의 일치로만 해석하고 지나칠 수도 없을 것이다.
프로이트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성의 억압은 다양한 성격 결함과 소극적 특성을 야기한다.
중국과 한국의 폐쇄적 태도의 배경에는 정절이라는 성의 문화적 관리 제도가 숨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모든 남성은 여성의 인격을 무의식중에 간직하고 있다.
남성들은 그것을 자신의 영혼처럼 느끼며 여성을 동경하고 사랑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아니마’로 불리는 감정이다.
이 아니마는 최초에는 어머니를 통해 깊은 가슴속으로부터 나와 근친상간적인 모자일체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점차 자신만이 신비한 여성을 찾아가고 만들어가게 된다.
이 여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남성들의 성취동기이며 에너지다.

이런 점에서 유교는 남성들의 아니마를 억압하는 문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여성은 신사임당과 황진이 그리고 춘향이에게서 볼 수 있듯이 단 세 가지의 여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쉽게 얻어지는 것들이었다.
권력과 돈을 통해서, 성취 동기이며 에너지인 아니마를 억압당한 유교 사회의 남성들이 자신의 분신인 여성을 위해 몸을 던지지 않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남자들은 여성을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해 여성을 틀어쥐었지만 결국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성을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해 만든 유교의 많은 장치들이 결국은 여성을 죽여버렸다.
유교 속의 여성은 더 이상 인간도 여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왜곡된 생명체에 불과했고 원한으로 뭉쳐진 카오스에 불과했다.
결국 여성은 폭발해버렸고, 남자들을 떠났다.
원시 속의 순수한 여성을 잃어버린 동양의 남자들은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남녀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남녀 차별의 오랜 문화가 만들어냈던 아니마의 억압은 아직 회복되지 못했다.
남성들은 아직 진정한 여성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남과 여란 답답한 유교적 테두리 안에만 가두어두기에는 에너지가 너무도 넘쳐나는 존재들이다. 테두리를 벗겨내야 한다.
인간으로서 서로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성을 원시 속의 순수로 돌려보내야 한다. 거기에 남성의 위안이 있다.




칼마다 맛이 다르다.


민족의 특성이란 환경에 의핸 만들어지는 후천적 습성의 복합체다.
그리고 그것은 그 문화권 내에서 형성되는 모든 유형 무형의 존재들의 특성을 결정짓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다.

무조건 우리 것이 좋다고 외칠 일이 아니다.
자신의 모습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곁에서 배워야 한다.
그것이 설사 자존심 싸움에서 지기 싫은 일본인의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또 사실 거의 베껴오고 있지 않은가?

조금 솔직해지고 허심탄회해지자. 그래야 인생이 즐거워진다.




일본 문화의 뿌리를 보는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제럴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유전자 정보와 골상 구조를 통해 일본인은 유전학적으로나 골상학적으로 한국 이민족들의 후예임을 밝히고 있다.
또 우에다라는 일본인 교수는 고대 일본인의 유골을 연구해 한국인 중에서 가장 키가 작은 충남, 전북 사람들의 유골의 평균 신장(161-163센티)과 이들의 신장이 동일함을 밝히고 잇는데,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고대 충남, 전북 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백제계 사람들이 6가야 지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증거로 삼고 있다.

백제 계열의 제사장이 교토와 나라 지역으로 이주해간 뒤 종교적 구심점이 필요했던 정치적 이유로 일본의 천황으로 추대되었음은 일본 학계에서도 받아들여지는 형편이니, 한일 두 나라 역사가 만든 사랑과 미움은 참으로 깊고도 묘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을 보는 시선이다.
우리의 모든 문화가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하면 싫은 것처럼 일본인들도 모든 일본 문화는 한국에서 건네준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문화 전파주의적인 입장이 아니더라도 중국의 문화가 한반도와 일본으로 건너갔고, 또 일부는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갔음을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고받으며 때로 사우고 화해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문화다.

만일 우리가 일본에 건네준 문화의 일단면만을 가지고 일본을 문화적 속국으로 치부하려고 하는 한, 그건 우리가 일본의 강제 통치를 경험했기 때문에 부려보는 억지고, 또 다른 콤플렉스일지 모른다는 혐의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다 주었기 때문에 너희들은 못났고, 우리에게 아픔을 주었기 때문에 너희들을 용서 못한다면서도, 일본의 도움이 없이는 자동차 산업은 물론 내노라 하는 방송국 프로그램조차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막막해지는 우리의 현주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모순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묘한 이중성을 엿보게 된다.
특히 정신대 할머니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더 착잡해진다.
한일관계의 묘한 상황만 벌어지면 매스컴들은 으레 할머니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 볼수록 안타까워진다.
반일 정서를 자극하는 데 그것보다 좋은 소재는 없다는 조금은 사려 깊지 못한 속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분들의 아픈 상처를 수시로 꺼내는, 어쩌면 횡포일지도 모르는 태도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일본 만화에서 배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에 노출되어 있었다.
아톰, 마징가 제트, 은하철도 999, 엄마 찾아 삼만리, 알프스 소녀 하이디, 아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미래 소년 코난, 빨강머리 앤, 명탐정 번개, 세일러 문, 드래곤 볼, 슬램 덩크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은 이름만 대기에도 숨이 가쁠 정도다.

이 중에는 내가 9살 아이와 함께 보는 것들도 있다.
나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우리들의 뇌리 속에는 이 캐릭터들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이제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일본인들만의 것은 아니다.
이 점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아이들의 낙서에 등장하는 만화 캐릭터들, 우리의 울적한 감정에는 아랑곳없이, 그곳엔 이미 한국인의 얼굴은 없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미 하나의 보편적 문화로 우리 주변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바로 어른과 아이들 가슴속에 숨은 살아 있는 색상들과 장난기를 효과적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유난히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빠져드는 이유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바로 한국사회 전반에 드리운 유교적 칙칙함에서 찾아낸 시각적 위안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 효과는 단순한 시각적 화사함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정열과 활력과 에너지를 동반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젊은 세대에게 폭발적으로 다가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교는 어떻게 우리의 상상력을 죽였나


이 ‘원시적 소박함’이 바로 모든 사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과 특정 동물을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일치시켜 생각하는 토템이다.
즉 자연계와 자신을 혼돈하여 사고하는 것이 원시적 사유의 특징인데,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바로 이 원시적 사유를 매우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작품들을 창조해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원령공주’다.
숲속의 이리 신에 의해 양육된 소녀 ‘산’, 그녀가 보이는 짐승의 성격과 생활 방식, 그것은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서 만들어낸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도시 속의 인간들이 잃어버린 원시의 정서, 즉 애니미즘과 토템의 리바이벌이다.
또 그것은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영역이 대단히 넓음을 뜻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곳에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원시 정서의 현을 퉁겨내는 묘한 노림수가 담겨 있는 것이다.




왜 일본 문화에는 폭력과 성이 난무하는가


그러나 일본인의 경우는 다소 다르다.
어느 사회가 특이한 형태의 행동에 심하게 기울어지는 것은 그 사회 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그런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비디오의 폭력은 일본 문화 저층에 깔린 죽음의 미화 의식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칼의 나라다.
일본 중세 전국시대에는 약 280개의 봉건 국가들이 있었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싸움, 칼싸움이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늘 죽음이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공포감을 해결하는 방법 중에 합리화라는 것이 있다.
공포를 당연히 있어야 할 걸로 합리화하여 공포에서 벗어나는 방법, 즉 공포와 타협하는 방법이다.
이 합리화가 좀더 진행되면 그것을 미화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원시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템의 형성 과정이다.

일본인들은 늘 존재하고 수시로 자신에게 엄습하는 공포를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어놓으면서 죽음을 미화했다.
그래서 그들은 할복을 하고, 자살 특공대를 만드는 것이다.
죽음이 공포일 때는 두렵지만 한반 아름다운 것이 되고 난 후에는 앞을 다투어 기꺼이 그 아름다운 퍼포먼스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의 승화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사실은 죽음과 하는 슬픈 타협이다.

일본은 거리 어디를 가도 포르노 비디오나 만화를 빌려보고 사볼 수 있다.
대학 옆 골목에 버젓이 포르노 비디오 전용관 간판이 서 있다.
그리고 잡지며, 공중전화 부스에 붙어 있는 상품화된 여자들의 사진들, 그야말로 성희 홍수로 뒤덮인 나라다.
하지만 그건 우리들 같이 어쩌다 마주친 상황에서 느끼는 당혹감 때문에 더욱 그럴 뿐이다.

일본인들에겐 그건 대단히 자연스러운 생활의 한 단면들이다.
서양 사람들이 기절을 할 만한 김치 찌개 냄새가 우리들에게는 무척 자연스럽듯이 말이다.
그게 바로 문화다.

일본의 성개방 문화는 기후와 칼 때문에 빚어진 것들이다.
더운 지역이기 때문에 노출이 많고, 그 끈적거리는 일본의 여름을 지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주 씻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성적인 유혹과 접촉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만의 것은 아니다.
비슷한 기후대의 타이완이나 필리핀, 태국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성 개방 분위기들은 그것이 그 민족의 도덕성과 꼭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일본의 온천 문화도 한몫을 하는 건 사실이다.

한국인이 일본인들보다 더 도덕적이라면 그건 인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순전히 기후 탓이다. 추운데 그게......?

조금은 에로틱하고 조금은 은근한 분위기의 한국과 중국의 춘화에 비해 일본의 춘화들이 유달리 폭력성을 많이 띠는 이유는 사무라이들의 폭력적 성문화 때문이다.
강간과 윤간과 엿보기 상황들은 바로 전시 성폭력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질 성문화다.
사실은 저질이 아니라 괴로울 고, 고질의 성문화다.

바로 이런 문화적 배경 차이 때문에 일본의 성문화 역시 우리에게는 낯선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만일 일본인들의 그런 저열한 성문화 때문에 걱정을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왜곡된 성의식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성의식을 초월할 수 있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우리만의 성문화를 우리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일본의 저질 성문화를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믿는다. 답은 우리가 제시해야 한다.




문제는 창조력이다.


우리가 만화의 일단면만을 문제 삼으며 천덕꾸러기로 쥐어박고 있을 때, 일본은 애니메이션이 지닌 마력을 캐치해낸 것이다.
‘장난기’를 팔아먹을 수 있다니! 이코노믹 애니멀이라는 시기 어린 욕설이 이제는 ‘장사의 천재’라는 칭찬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 애니메인션이 지닌 애니미즘과 폭력, 성의 요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것들이다.
서구의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일본 문화는 전세계에서 일본에만 있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으로 물이 넘치듯 넘어오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있다.

유교의 정신적 억압이 만든 빈약한 상상력과 새로운 대체 윤리를 마련하지 못한 데서 오는 공허감,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본 애니메이션 콘텐츠에 대한 무조건적 숭배.




중국을 이기려면 먼저 철저히 장사꾼이 돼라.


‘내가 만일 인사동 동장이라면, 여기에 있는 모든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작은 돌들로 운치 있는 돌길을 만들겠어요.
일부는 황토로 깔고, 그리고 경복궁 바닥에 있던 큰돌을 하나 깔아놓고 안내판을 세워 ’왕이 밟았던 돌‘이라고 표시를 해놓겠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돌을 밟고 서는 순간 잠시나마 조선의 왕이 되어볼 수 있는 것이다.
또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남대문 시장 입구에 전통 양식으로 문을 건축해서 관광객들이 사진도 찍고 ‘이곳에 다녀갔다’는 추억을 갖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양인들을 만나보면 한국에 대해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화 유산 중에는 상품성이 있는 것이 무척 많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잘 팔리도록 잘 포장하여 내놓을 수 있는 의식과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문화의 상품화 전략이 부족한 것이다.

문화의 상품화 전략은 한국인들이 중국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식이다.
그것은 중국인들에게 한국 문화 상품을 팔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애지중지하고 ‘이건 절대 못해’로 못 박아놓았던 존재들까지도 상품화하겠다는 마인드의 전환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 상품화 전략은 세부적 아이템에 대한 어드바이스가 아니다.
세종대왕의 친필이라도 팔 수만 있으면 팔아야 한다는 장사꾼 기질을 기르라는 뜻이다.
그래야 중국인들의 장사군 기질과 사워 이길 수 있다.

문화 유산을 팔자니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네가 제 정신이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팔 수 있다. 그것도 고가에.

베이징 류리창(우리나라 인사동 같은 고대 문물 판매상가)에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모조품 공장이 있다.
공장이라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예술가의 거대한 작업실 같은 분위기다.
그곳에서는 중국전역에서 선발된 화가와 목각 전문가들이 고대의 그림, 글씨들을 붓으로 복사해내고 있다.
가느다란 붓의 터치를 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그려내면 목각 전문가는 이를 조각도로 정밀하게 새긴다.
물론 다른 색상, 농도 때문에 여러 조각으로 세분화해서 새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백 장을 찍어낸다.
물론 찍어내는 사람도 고도의 숙련공들이다.
시시껄렁해 보이는 조각에 물감을 바르는 사람도 예술계에서 인정받는 미술학과 졸업생들이다.
수많은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이미테이션은 전문가도 진짜와 구별을 해내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다.

이게 바로 장사다. 이게 바로 문화의 힘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이다.

왜 우리나라 관광 광고는 대통령이 맨 앞에 서고 나머지 연예인들이 뒤에 줄줄이 서서 웃고 있는가?
그게 무슨 뜻인가?
관광 오면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만나주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와서 존경하라는 뜻인가?
대통령의 인간 승리를 축하하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장사와 정치를 구별 못하는 이유는 순전히 아부 때문이다.

정말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면 차라리 이런 멘트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 오십시오. 청와대 침실을 렌트해 드리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청와대 침실이라도 렌트를 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없다면 단언컨대 중국 장사는 못한다.
우아한 비즈니스라는 말은 중국인의 뇌리 속에는 없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답이 없는 문제는 없듯이 중국인들과의 거래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무엇이든지 팔겠다는 철저한 장사꾼 기질로 무장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청와대 침실 렌트를 홍보하고, 상사맨들은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파견된 지역전문가들은 끼고 다니는 고추장 단지를 다 깨뜨려버리고 거리의 ‘니유러우미엔(쇠고기 국수)’을 벌컥벌컥 마셔대야 한다.
그리고 대사관, 영사관들은 장사꾼 보호에 눈에 불을 켜고 나서야 한다.
그쯤 되면 중국 정보는 한국 정부에 은근히 겁을 먹을 것이고,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금 진지한 태도로 한국인을 상대해줄 것이다.

중국아 기다려라. 이제 진짜 장사꾼이 간다.




한문 사용을 주장하는 분들의 진짜 속내


흔히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한자 교육을 통해 유교적 가치관을 재교육하고 싶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
버릇없는 요즘 젊은 것들에게 도덕을 심어주겠노라며 ‘명시보감’ 따위를 새로 읽게 만드는 해프닝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별 볼일 없는 상품을 조금 괜찮은 물건과 함께 파는 일종의 ‘유교 끼워 팔기’ 형식으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불순한 의도 때문에 우리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화적 손실을 보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는 한자를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로 보지 않고, 한자를 통해 신세대를 재교육시키고 자신들의 가치관에 재편입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면서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의도 때문에 신세대들은 ‘한자=구닥다리’로 도식화하면서 새로운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미래 사회를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엄청난 문화적 경제적 손실을 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자는 아시아에서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받아들여 사용하면 되는 것일 뿐, 한자를 한글에 섞어쓸 필요는 없다.
또 학교에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가르칠 필요도 없다.
효과적인 프로그램만 있다면 한자 문제는 아주 간단하고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한문을 혼용하자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다.

우리 전통 문화의 계승을 생각해도 그렇고, 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영향력을 고려해봐도 그렇고 한자는 필요하다.
그러니, 일본처럼 아예 한자를 한글 사이에 넣어 함께 사용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한자 문화권에 자연스레 편입되면, 중국, 일본 등과 의사소통을 할 때 편리하다는 현실적 고려도 있긴 하지만, 어차피 중국 문화권의 영향 안에 있으니 적당히 묻어 살자는 변형된 사대주의적 심리도 들어 있다.

지금도 토씨 빼고는 거의 한자를 섞어 쓰는 변형된 사대주의자들은 의외로 많다.
관공서의 공문, 군대 용어, 법원의 용어 등에는 한자로 먹고사는 내가 봐도 알기 힘든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그런 글자들을 쓰면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있는 듯하다.
거기에는 다름 아닌 한자를 모르는 세대나 사람들로부터 은근히 권위를 인정받으려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왜곡된 심리가 숨어 있다.

또 흔히 동음자의 처리 곤란을 이유로 한자를 써야 한다는 논리, 예를 들면, 전쟁에 싸움을 위해 나서는 전사(戰士)와 전쟁에서 죽는 전사(戰死)는 발음 때문에 헷갈린다는 논리는 사실 이유치곤 조금 모양새가 궁색하다.
그건 꼭 개털 붓에 소나무 그을음 먹을 찍어 화선지에 글로 써야만 이해가 되는 조선시대 유생들의 논리다.
핸드폰 시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유다.
그런 논리면 대한민국의 라디오 방송은 모두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좀더 시류에 어울리고, 과학적인 분석 근거를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이들이 사용하고 싶어 하는 한자들을 분석해보면, 불행히도 적지 않은 수의 한자가 아시아 문화권에서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는 것들이다.
현재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는 이른바 1,800자 상용 한자만 분석해 보아도 그 중 적지 않은 수는 동아시아에서 이미 도태되고 생명력을 잃은 것들이다.

이 글자들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당시, 한글 전용화 정책에 맞서 교육부가 만들어냈는데, 글자들의 면면을 보면 동북아 언어로서의 기능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 아닌 전통 한학자들의 ‘전통 계승’ 의지만이 가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자 회복을 주장하는 광고에 새까맣게 나열된 내로라 하는 벼슬아치들의 이름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다는 것일까?
그건 차라리 내가 이런 사람인데, 이런 벼슬에 있는 사람인데 우리들이 하는 이 교훈도 듣지 않겠느냐는 한 장의 으름장이다.

바로 그런 억지와 으름장이 역겨워서 우리가 한자를 버리고 있음을 왜 모를까?
차라리 그 돈으로 젊고 가능성 있는 학자들에게 용역을 주어 한자의 아시아 언어로서의 위상을 분석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설득하고, 또 쉽고 재미있는 학습 방법을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 후대를 위해 해야 할 서비스가 아닐까?

한자는 전세계 20억 인구가 사용하고 있는 글자다.
특히 이들 인구의 대부분이 동아시아에 몰려 있으니 어찌 보면 동아시아 전체가 한자를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자의 역사에 대해서 커다란 오해 하나를 하고 있다.
그것은 한자를 중국인의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자.
그러한 생각은 중국을 아시아 문화의 패권국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중국인들의 오래 된 희망 사항이며, 이에 편승하는 일부 사대주의자들의 낡은 주장일 뿐이다.

한자는 아시아인들 모두가 만들어낸 공동의 문화적 유산이다.
한글이 세종대왕의 개인 재산이 아니듯이 수천 년 전 여러 종족이 함께 교류하면 만들어낸 공동의 발명품이다.
이제 그 이유를 말해 보겠다.




한자가 아니라 Asia Sign입니다.


한자는 중국의 한족만이 소유하고 발전시켜온 글자가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에 걸쳐 중원, 한반도, 일본열도를 부지런히 오가며 살던 아시아인 공동의 합작품이다.
다시 말해 중국인과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발전시켜온 동양 문화의 원천이며 생명의 시그널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한자 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앞서 언급했지만, 유교적 재교육의 의도를 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자의 본래적 의미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자는 그 내부 구조를 풀면 그 안에 담긴 문화적 코드를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한자를 풀어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면 익히기가 대단히 쉽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말이 맞기는 하지만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문깨나 아는 기성세대는 물론,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이나 중고등학교 교사, 심지어 교수들의 경우도 한자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모습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의 ‘해석’은 대부분 ‘인상파’적인 것들로 고대의 문화적 배경을 완전히 상실한 후대의 한자만을 가지고 진행하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들일 뿐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한자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해보겠다.

귀신 귀의 경우, 갑골문을 보면 이것은 얼굴에 가면을 쓴 이방 민족의 모습이다.
고대의 부복들은 사회적 분업 측면에서 각자 나름의 역할과 직업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면, 토기를 잘 만드는 부족, 마차를 잘 만드는 부족 등으로, 가면을 쓴 귀 부족은 장례를 전문적으로 치러주는 종족이었다.
때문에 사람의 혼백을 뜻하는 귀가 된 것이다.

또 오나라 吳의 경우 이것은 질그릇을 어깨에 멘 채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걷는 모습의 상형문이다.
밑의 大형은 사람의 정면형이고, 위의 口형은 사실 어깨에 멘 질그릇의 모습으로, 오나라는 지금 중국의 상하이 일대로 예부터 비단과 도자기 공업이 성행한 곳이었다.

또 가장 오해가 많은 글자로 글씨 文이 있다.
모두를 잘못 알고 있는 이 문자는 사람의 몸에 심장을 그려넣은 모습이다.
즉 문은 사람의 몸에 주술적 그림을 그려넣었던 문화를 알게 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죽은 사람의 가슴에 심장을 그려넣음으로써 부활을 기원하는 의식의 한 과정이었다.

즉 우리가 지금 말하는 글자로서의 기록이 아닌 주술적 그림이라는 뜻이다.
당사자들의 모든 감정과 애원과 느낌이 듬뿍 담긴 그림으로 후일 인간의 모든 기록을 상징하게 된다.
그 기록 중에서도 감성이 담긴 기록을 말하는 학문이 바로 文學인 것이다.

자신들도 잘 모르면서 학생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권위 있게’ 전달하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각 한자가 지니고 있는 배경 지식에 관한 오해와 억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공연히 한자를 가르치면서 어설픈 문화 풀이를 곁들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건 문화적 이해도 아니고 전통의 계승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걸 통해서 아시아의 커뮤니케이션 문화 속으로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는 전통으로서의 가치도, 의사소통 도구로서의 기능도 모두 배우지 못하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전통 계승과 커뮤니케이션의 두 단층 사이에 걸터앉은 채 국가적으로 엄청난 경비와 노력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방법이 전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보다 새로운 감각과 시각을 가지고, 동아시아 문화에서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도구인 한자의 가치와 내면에 대해 생각하고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 한족의 언어라는 의미로 굳어진 한자라는 이름 대신에 21세기 미래 동양의 시그널을 상징하는 아시아 사인이라는 명칭을 쓰고 싶다.



한자 간단히 배우기

한국 한자음을 가르칠 때는 일어 발음, 중국어 발음을 동시에 가르친다.
다행히 한자의 한국어 발음과 일어, 중국어의 발음은 대단히 유사하다.
그것은 같은 꼴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자들이 한반도와 일본으로 건너간 후, 한반도는 북방 계통의 음 영향을, 일어는 북방 계통 음과 동시에 중국 동부 해안지역 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약간의 변형은 있지만 몇 가지 분석을 통해 충분히 그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가 한자를 동아시아 문화권의 언어 소통 도구로 사용하려면 이 언어학적 특성을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집 家는 중국어 음은 ‘찌아’이고 일어 음은 ‘카’다.
또 門의 중국어는 ‘먼’이고 일어 음은 ‘몬’이다.

한 번만 더 고민하면 쉽고 경제적인 방법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해보지 않는 것일까?
간단한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왜 온 나라가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을 들여가며 고민을 하고 자라나는 신세대들에게 학습의 부담을 전가하려 할까?
의미도 불분명하고, 논리도 없는 상태에서 왕창 가르쳐놓고 알아서 하라는 것이 어떻게 교육일 수 있는가?

한자 교육이 우리의 미래를 진지하게 우려하는 차원이 아닌 한문 교사들의 밥그릇 싸움 차원에서 맴돌거나, 보수주의자들의 ‘신세대 길들이기’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시아적 가능성 운운은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가 될 뿐이다.

그런 무책임이 국가적으로 신세대들에게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천년 묵은 낡은 방법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한자 교육을 강요하면서 그들을 좌절의 악순환 속으로 빠뜨리는 우리는 많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나는 이러한 주장은 정책 입안자들이나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주장을 수용하기에 그들은 너무 아카데믹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전통 계승의 문제는 실력 있는 번역자들을 통한 ‘한국어화’ 작업으로 해결될 수 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관심 있는 젊은이들에게 고도의 훈련을 시키고, 높은 보수를 주어 역사적 사명감과 문화적 자긍심을 지닌 상태에서 번역에 착수하고 그것을 아름다운 한글로 옮겨 일반인들에게 소개할 때, 누가 그것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겠으며 누가 그 문화적 숨바꼭질에 참가하지 않겠는가?

그 문헌들이 중요하다고 해서 국민들 모두를 훈련시키겠다는 생각은 비민주적이기도 하고, 비과학적이기도 하다.
그건 정서적으로도 불가능하고 실제적으로도 불가능하다.
한자 사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국민들이 직접 그것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은 들어 있다.

물론 말은 ‘본적과 주소 정도는 한자로 써야지’라고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본적과 주소 따위를 무엇 때문에 한자로 써야 되는지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순한 숫자 코드로 바뀌어도 그만이고, 한글로도 잘 쓸 수 있는데. 더구나 본적 문제는 지역 감정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모든 서류에서 폐지해야 한다.
고향이 한국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지역 감정이 심한 타이완 같은 나라는 모든 국가 서류에서 본적 표기를 금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좁은 한국이 아닌, 아시아를 이야기하고 아시아 무대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 더 나아가서 아시아를 이해하고 아시아의 한 부분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능력과 안목을 갖추는 데 한자는, 아니 아시아 사인은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오랜 세월 권위를 누려온 우리 사회의 한자에 대한 잘못된 교육관과 풀이 문화를 6월의 소낙비처럼 씻어버리고 싶다.



공부는 끝났다.

우리 집에서는 ‘공부’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공부해라’지만 가장 효과 없는 주문 역시 ‘공부해라’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집에서는 의도적으로 이 말을 Tm지 않는다.
다만 필요한 사항이 있을 때는 ‘동물 책을 읽자’ ‘모르는 단어 써보자’ 등의 보다 구체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나는 이 방법이 아이를 영재나 천재로 만들 것이라는 확신도 없고 또 그런 기대도 없다.
나는 단지 아이가 불합리한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존재에게 주어진 만큼’ 마음껏 배우고 익히고 즐길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학부모들이 원하는 공부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읽거나 써야 한다.
또 적당한 체크를 위해 주로 쓰기를 강요한다.
조금 양보해서 동화책을 읽으라고 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독후감이나 일기 등을 쓰게 만드느다.

체크하기 편하고, 써놔야 학습이 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더욱이 논술이 대학 입시에 들어오면서 ‘쓰기’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우리는 큰 실수를 하고 있다.

엄마들이 흔히 말하는 공부의 대상은 지식이다. 특히 근대사회 들어서 ‘보다 많은 양’의 지식을 확보함으로써 사람들은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존경을 살 수 있었던 경험 때문에 지식의 확보를 다그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지식이 편중되어 있었고, 몇몇 엘리트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다.

유교 사회의 양반들이 대표적인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 앞에 나타난 사회는 이런 사회가 아니다.
수많은 정보들은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완전히 오픈되어 있다.
이제는 지식을 누가 많이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이들 지식은 과거처럼 문자 매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멀티미디어 기능을 통해, 시각뿐만 아니라 인간의 청각, 균형감감, 촉감까지 동원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24시간 우리들 주변에 뿌려놓고 있다.
때문에 이제는 단순하게 글을 읽고 쓰는 능력만으로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 정보들을 해석할 수가 없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있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현재 당면한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감지하고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만나는 현실 문제들은 통합적 유기체다.
따라서 평면적인 글공부만으로는 이 유기체가 지닌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글공부, 즉 ‘쓰기’에 빠져든다.

이 글공부와 쓰기가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전염병이 이른바 조기 한글 교육이다.
걸음마도 잘 못하고, 말도 잘 못하는 상황에서 한글을 조합해서 읽어내고 동화책도 읽는다.
모두를 자랑거리로 삼지만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즐거운 표정들이 아니다.

사실 한글은 무지무지 쉬운 문자다. 잡집마다 서너 살만 되면 엄마들의 가혹한 훈련 끝에 한글을 읽는 영재로 둔갑하는 것은 한글이 그만큼 쉬운 문자이기 때문이다.
그건 뒤집어 말하면 학습할 수 있는 연령만 되면 언제든지 바로 습득이 가능한 문자임을 뜻한다.
실제로 외국인이고 문맹 할머니들이고 두세 시간이면 글자를 읽도록 만들 수 있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사물을 보고, 만지고, 먹어보면서 청각과 촉각 등을 훈련하는 일이다.
그리고 성격 형성에 크게 영향을 주는 대소변 가리기 시기와 사람 사귀기 등에 더 관심을 두고 길러야 아이가 똘똘해진다.
신경질이 가득한 채 한글 단어 몇 개 읽는다고 그 아이의 능력이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영어나 외국어도 소리로 익히도록 곁들이면 좋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그것이 영어인지 중국어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 반응은 참으로 신비롭기까지 하다.

나는 집안 부모의 노력으로 영어와 중국어를 상당한 수준으로 구사할 줄 아는 초등학교 아이를 알고 있다.
한국어를 하는 사람에게는 한국어를, 중국어를 하는 사람에게는 중국어를, 영어를 하는 사람에게는 영어를 건네고 듣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지닌 신비한 학습 능력에 또 한 번 놀라곤 한다.

이제 공부를 위한 공부는 끝나야 한다.
그것을 끝내지 못하면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
이제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지식을 머릿속에 쑤셔 박는 공부가 아닌 숨은 능력을 끌어내는 지혜를 이야기해야 한다.



당장 ‘양놈’을 찾아 나서라

내가 중국어를 마스터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영어 공부에 그대로 적용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의 방법은 간단하다.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도 철저히 소리로만, 그리고 모든 쪽팔림에서 초연해지는 것이다.

첫째, 반드시 써먹겠다고 결심하라. 둘째, 글자를 버리고 소리로만 익혀라. 셋째,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지 말고, 생각나면 일단 내뱉어라.

이것을 위해 색종이, 가위, 복사한 화폐, 사탕, 그림등은 온갖 도구를 동원하고, ‘지엔따오, 스터우, 뿌(가위,바위,보)’놀이까지 동원해 중국어 감각을 심어준다.
또 1학년 때는 글자를 강요하지 않고, 아예 시험도 ‘소리’로만 본다.
아무리 멍청이라도 한1년 소리만 듣고 동작을 익히다보면 웬만한 말은 알아듣고 할 줄 안다.

내 프로그램으로 가르친 아이와 기존의 전통적인 방법(글씨 쓰고, 따라 읽고, 문법시험 보고)으로 공부한 아이와는 6개월만 지나면 능력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이렇게 했을 때 얻게 되는 가장 큰 효과는 중국어 구사력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신감이다.
자신감이야말로 ‘존재의 이유’다.

나는 한국의 영어 교육이 실패한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반드시 써먹겠다는’의지가 부족한 데 있다고 본다.
선생과 학생 모두가 써먹겠다는 의지와 필요 때문에 영어를 가르치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관문 통과’를 위해 필요한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늘 골치만 아프다.

때문에 교과서는 사용 현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문법과 어휘에만 중점을 둔다.
또 교과서를 만들 때도 주로 특정 문장을 통해 아이들에게 ‘도덕적 교훈’을 주겠다는 유교적 ‘훈수’가 바닥에 깔려 있다.
우리나라 지식인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들은 가르친다는 행위에 반드시 ‘도덕적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유교의 교육관과 글을 숭상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통적으로 유교는 말에 대해서는 억제하는 태도를 가졌고, 시나 문장 등의 글 다루기에는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러다보니 외국어 학습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의사소통은 무시되고 글 다루기 능력 위주로 교과서가 만들어진다.
또 선생님들은 그것을 가지고 역시 의사소통과는 관련이 없는 단어 스펠링이나 문법 등만을 가르친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교과서를 만들었던 사람들이나 가르쳤던 사람들 중에 영어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적으로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명이 영어 ‘공부를 열심히’해댔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던가? 연습장이 새까맣게 되도록 단어를 외웠건만 ‘하이, 굿모닝’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영어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니다


영어는 이미 외국어가 아닌. 영어는 이미 모든 외국어를 초월하는 국제어가 되어 있다.
국제어인 영어를 쓰지 않아서 보는 손해나 비용은 나라 전체로 볼때 너무도 막대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여전히 거센 반론에 부딧친다.
또 그 ‘아. 아. 대한민국’론이다.

컴퓨터를 대체하려는 셈틀, 프로그래밍을 대체하려는 풀그림, 골키퍼를 대체하려던 문지기, 코넉킥의 모서리 차기등의 표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 모국어의 아름다움은 이제 전통 밥상과 인사동, 몇몇 시인들의 원고지, 그리고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과학, 의학, 통신, 디자인,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등 21세기 문화의 핵심으로 들어서고 있는 이 분야의 어휘들은 거의 100퍼센트 외래어다.

모국어를 아무리 완벽하게 구사한다 해도, 영어를 못하면 영어권에서 볼 때 그는 문맹이다.
중국어를 못한다면 그가 아무리 정치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중국 정치 운운한다 해도 적어도 중국어권에서는 문맹이다.
다양한 문화의 언어와 의미로 통합된 21세기 정보들은 한국어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 되어버렸다.

영어가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받아들이면서 풍부한 어휘 영역을 구축할수 있었듯이, 세계를 향해 열린 언어는 결국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또 인도 영어, 싱가포르 영어, 홍콩 영어에서 보듯이 모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되는 영어들은 모국어의 영역을 축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모국어에 물들면 독특한 발음과 표현들을 낳고 있음도 ‘순수국어 수비대’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입는 것이 헤엄치기에 편하듯이 영어를 그저 편리한 의사소통 도구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그것을 너무 민족적 입장에서 해석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초라해진다.
물론 우리 것, 우리말을 외치는 몇몇은 강연도 하고 책도 팔면서 자신들의 희소가치를 만끽할 수도 있지만 별 볼일 없는 다수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사회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는 폭력과 자본과 지식이다.
그 중에서도 지식은 정보 시대로 정의되고 있는 21세기에 인간의 가치를 구분 짓게 될 가장 영향력 있는 요소로 꼽히고 있다.
어느 사회나 지식을 소유하는 계층이 그 사회의 상류층, 지배층으로 군림해왔다.
조선 유교 사회에서 유일한 문자인 한자를 지배한 지식인들이 권력과 자본 모두를 독점했음을 상기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모든 정보와 지식을 가장 폭넓고 깊게 담고 있는 영어의 장악 여부는 이제 앞으로 각 개인의 몸값은 물론, 사회, 조직, 국가에 이르기까지 크게 영향을 줄 것이다.

일부 여유 있는 계층의 영어 조기 교육은 그 아이들을 궁극적으로 좀더 새롭고 유용한 정보의 세계로 초대할 것이며, 보다 빠르게 가치 있는 정보와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사회 전체로 볼 때, 부모의 부와 사회적 힘이 영어라는 지식을 통해 문화적으로 상속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또 개인의 삶이 존중되는 열린 사회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할 만한 것이다.

이제 영어 조기 교육은 그 교육적 효과를 논할 시기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 아니 다급한 필수가 되어버렸다. 일반적으로 7세까지는 프로그램과 환경에 따라 2개 정도의 언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습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왜 애써 부인할까?
설사 2개가 모두 모국어 수준은 되지 않는다 해도 의사소통만이라도 불편이 없다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지 않을까?

그에 앞서 영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과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의 효과적 학습 방법은 앞서 말했듯이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만 가지면 마련될 수 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끼리의 학연도 깨고 선후배도 깨고 제대로 된 프로들이 책을 만들고, 실력 있는 교사들이 과학적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강단에 서서 ‘써먹어야 한다’는 의지로 가득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학습은 효과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지도할 수 없는 우리 교육 현장의 현실이 문제다.
영어 회화 가르칠 능력이 없다보니까 자꾸만 우리 것, 정체성만을 강조하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효도 실습만 진행하는 것 아닌가?

누가 뭐래도 우리의 정체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김치, 된장이 모조리 사라지고, 우리들 머리털이 어느 날 갑자기 노래지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한 한국인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것으로 무장된 학국인이 아닌 다른 것에 익숙한 한국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 것이 그렇게 대단하면 적극적인 홍보를 위해서라도 외국어에 익숙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모습만을 가지고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우리는 최소한 영어, 일어, 중국어 3개 국어는 할 줄 알아야 하는 사명을 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힘이 약한 나라는 이래저래 숙제가 많은 법이다.




실력이 도덕이다.


도대체 4년 동안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서 배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동문들로 구성된 이 ‘상아탑 마피아’들은 또 다른 새끼 갱스터들을 낳는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리라. 하지만 그건 엄연한 폭력이다.
제도를 통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젠틀해 보이지만 사실은 위장된 폭력이다.

원시 사회에서 폭력은 생산도구를 독점하고, 도구의 독점은 생산을 다시 독점해 권력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이 권력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든 이른바 제도에 의해 세습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세습은 마침내 계급을 만들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일류 대학들이 만들어내는 커넥션 역시 이런 순환 고리를 자지고 있다.
즉 위장된 폭력을 통해 지식을 독점하고, 지식 독점을 통해 발언권을 확보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멤버를 끊임없이 보완하며 세습해가는 과정이 동일한 것이다. 세칭 일류대 교수들이 약간의 학문적 기초를 쌓은 다음에는 부지런한 인사를 통해 ‘원만한 인격’을 만든 후 정치판으로 뛰어드는 모습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한 가지 더 웃기는 건 자기들 나름대로 한국 제일의 두뇌들로 자처하는 이 친구들이 늘 뭉쳐 다니고 엉켜 산다는 것이다.
주먹으로 먹고 산다는 어깨들이 그 덩치에도 뭐가 무서운지 늘 뭉쳐 다니는 것처럼, 학문의 자유와 창조적 학문 활동을 부르짖으면서도 그토록 뭉쳐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좋은 대학 공부 안 해봐서 얼마나 잘 가르치고 잘 배우는지는 모르지만 뭉쳐 다니는 걸로 봐서 뭔가 켕기는 게 있긴 있는 모양이다.

교육이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도록 하는 과정이다.
얄팍한 지식을 팔고 돈을 받는 거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의 도래, 이것이 나름의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이제 리더와 오더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팀웍과 코퍼레이션의 시대가 왔다. 개인의 삶이 조직의 효율보다 우선되는, 다시 말하면 업무의 권위자는 있어도 자리의 권위자는 필요치 않은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제 우리들 공존의 삶의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팀메이트들이지 혼자 잘난 리더가 아니다.

이제 경쟁은 자신의 재능을 상대로 벌어져야 한다. 자신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나온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인정받을 수 잇도록 스스로와 경쟁해야 한다.
전화번호부를 다 외울 수 있는 기억력이 없다 하더라도 색깔에 민감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색깔로, 소리에 민감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소리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실력이 도덕이다. 아부와 처세의 생존 전략은 이제 끝났다. 굽실거리는 모습으로 도덕을 가늠하던 시대도 끝났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실력으로 일하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 피곤한 이유


어린 아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어른에 대한 예의’가 아닌 인간에 대한 예의 말이다. 우리 사회는 유교적 수직 윤리로 지탱되는 사회다.
때문에 인사는 반드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해야 하고 윗사람은 당연히 ‘에헴’으로 받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이 깨질 때 윗사람은 분노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인격적으로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을 단지 나이가 많다거나 자리가 위라는 이유로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국인의 이중인격은 이래서 형성되고, 등 뒤에서 하는 말이 인사 때의 표현과 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모든 인간에 대해 예의를 표해야 한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자신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인간은 자신이다. 나는 아이 자신이 대단히 중요하고 아빠나 엄마에게서 존경받을 수 있눈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인간끼리의 존경에는 아빠도 엄마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한다.
눈을 맞추고, 웃는 표정으로 하는 인사법은 신영이에게 큰 능력을 만들어주었다.
모든 사람을 보면 웃고 인사하는 아이가 되었다.

‘왔느냐?’

물론 현재는 말투가 조금 바뀌었다.

‘이제 오냐?’

어찌 됐던 이런 인사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이 힐난조, 심문조임을 알 수 있다.
‘당연히 와야 되는 곳에 와서 인사하는구나. 당연하지.’ ‘왜 이렇게 늦었지? 좀더 일찍 와야 하는 것 아니니?’ ‘너의 개인적 시간은 집 밖에서는 없어. 무조건 학교 끝나면 들어와야지’하는 심리가 무의식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부모님들이 자녀를 맞을 때의 심리에는 ‘다그쳐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숨어 있다.
그리고 조금만 늦었거나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전개될 때는 바로 심사가 뒤틀린 표현이 자녀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자녀들 또한 잠재적으로 이러한 질문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말투에 실린 옅은 감정의 색깔을 예민하게 파악하고 바로 날카롭게 반격을 한다.

물론 반격은 대단히 조심스럽고 위장된 상태에서 진행된다. 대부분은 침묵이다. 아주 피곤한 표정과 함께. 이러한 표정에는 내가 공부를 위해 대단히 지쳤으니 말 시키지 말라는 경고가 담겨 있다. 그것은 여차하면 부모님들이 목숨처럼 생각하는 공무에 지장 있을 것이니 알아서 기라는 경고다.

부모와 자식 간에 오고가는 이러한 신경전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가정에서 매일처럼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갈등 해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요즘 애들 버릇없는 것에 대해서만 걱정이다. 요즘 어른들 사랑 없는 것은 말하지 않고.

그러나 사실 공부가 그리 피곤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여전히 즐겁고 활기차다. 그들은 짬짬이 여러 가지 음담패설과 연예인, 선생님, 헤어스타일, 이성 친구들 이야기를 동원해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적절히 소화해낼 줄 안다.
자기 조절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이 집 안에만 들어서면 왜 갑자기 피곤해지는가?

사실 아이들이 집에만 오면 갑기 피곤해지는 이유는 본능적인 자기 방어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할 말이 번하기 때문에 듣기 싫다는 의사 표시가 바로 ‘피곤하다’이다.
‘나 정말 피곤해’에는 ‘바로 엄마 말이야’가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제 방에 들어간 아이는 잠시후 다시 생생해지면서 자기의 세계로 빠져든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이 있다. 인사를 바꾸어보라.

‘사랑한다. 어서 와’

‘어서 와’는 ‘너를 기다렸다’ ‘너는 환영받는 존재야’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물론 이런 인사를 어느 날 갑자기 하게 된다면 아이는 순간 닭살이 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싫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인사를 좀더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은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 대하려는 부모의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기성 세대는 완전히 밑지는 장사가 될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 아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러한 자세 전환이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놓치지 않을 최선의 방법이라면 어찌하겠는가?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아이들은 이제 온갖 문화권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
그들과 만날 때 첫번째로 건네야 하는 것이 바로 따뜻한 미소이고, 당신을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마음이다.
인사에 이것을 담아야 한다.
그러면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사를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문화의 세대로 들어선 아이들에게 새로운 생존 전략을 가르쳐야 한다.

인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인사는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따뜻한 감정이 전달될 수 있는 사랑의 인터넷이다.
아이에게 고개 숙여 인사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아이와 대화할 수 있다.

‘그 따위로 하니까 요즘 것들이 점점 더 버릇이 없어지지’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이미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선생님이 하는 말을 다 듣지는 마. 네가 판단해봐.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어.
그리고 상은 정말 네가 떳떳하게 경쟁해서 얻을 수 있는 곳에서 타면 돼’

나는 아이의 잘못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벌을 주지만, 그저 단순한 ‘도덕적 부담감’ 때문에 ‘그래도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잘 들어’라고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선생님과 동시에 나도 불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청소년들의 많은 불만중 하나가 자신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어른들이 얼버무리는 것이다.

이제 가르치려고만 드는 선생님과 학부모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잠재된 창의력을 끄집어낼 줄 아는 친구 같은 선생님과 학부모가 필요하다.
한 번뿐인 인생을 무작정 맡기기에 인생은 너무도 값진 것이다.

‘선생님,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논술이 바보를 만들고 있다.


우리들의 사고방식 자체를 해체해보는 발상의 전환이 있지 않으면 어떤 제도도 우리들을 지루한 ‘공부’에서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공부’는 이제 세계의 모든 문화를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개혁되어야 한다.
책상에서 ‘쓰기’만을 할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과제를 찾고, 그것에 숨어 있는 ‘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동시에 자신만의 창의적인 해결책을 위해 정보를 ‘어디에서’ 찾아내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반성문적인 논술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들이 철석같이 신봉하고 있는 ‘공부‘의 신화부터 깨뜨려가야 한다.





신영이의 더불어 학교


아이들은 한자 시간에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가지고 온다.
나는 아이들에게 스케치북을 펼치게 하고 그날 가르칠 글자들을 가르친다. 방법은 이렇다.

‘자 오늘은 계절을 배우자. 먼저 봄을 한번 그려보자’

그러면 아이들은 각자 봄의 이미지와 환상을 마음껏 그린다.
다 그리고 나면 서로의 그림을 소개하게 한 후, 각 그림에서 공통의 분모를 찾아내도록 한다.
아이들의 봄 그림은 무척 다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언제나 공통의 이미지가 들어 있다.
태양이 있고, 풀이 있고, 새싹이 있고, 때로는 묘한 선으로 만들어진 자기들만의 ‘기쁨’과 ‘축하’도 있다.

그리고 나면 나는 봄에 해당되는 갑골문을 화이트 보드에 그리며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맞추어가며 봄을 만들어간다.
왜냐하면 4,000년 전에 만들어진 갑골문에는 원시의 상상력이 그대로 담겨 있고, 그것은 놀랍게도 아이들의 상상력과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한국인을 넘어서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서로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그의 국적이 어떻건 피부색이 어떻건 더불어 살 준비를 해야 한다.
검은 사람이건, 흰 사람이건 그 안에 살아 있는 생명을 생각하고, 사람임을 존중하면서 한 팀을 이루며 살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것은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비굴한 타협 때문이 아니다.
진정 서로를 삶의 동반자로 파트너로 생각하는 의식의 전환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물론 사회 곳곳에 보이는 수많은 문화적 반항과 자유선언을 위해 자행되는 그 ‘작위’와 ‘흉내’로부터도 우리는 자유스러워져야 할 필요가 잇다.
서로가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서로가 생명체임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모두 껍질을 벗었으면 한다.
옆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사람임을 의식하면서 말이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권리와 생명으로 가득한 사람임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한국인을 넘어서자.
그리고 사람을 만나보자.
그곳에서 한국인의 문화가 아닌 사람들의 문화를 만들어보자.




작은 것이 아름답다.


우리는 우선 주변의 작은 나라로부터 배워야한다.
타이완의 유연함을 배우고 싱가포르의 깨끗함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그들보다 인구도 많고 조건도 좋은 편이다.
만일 그들을 먼저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점점 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스탠더드란 다른 것이 아니다.
투명한 일 처리, 깨끗한 마음, 열린 가슴, 그리고 단단한 실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외면하고 우리끼리 돌아앉아 형님 아우 나누어 먹겠다는 발상이 바뀌어야 한다.

학연과 지연과 혈연이 업무에 연결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니 그것은 이제 독약이다.
끼리끼리의 밀실 야합이 국가와 사회를 거덜내고 만 현실 앞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오직 하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함, 신용, 야무짐의 3C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작게 살자. 눈은 멀리 두어야 하지만 마음의 키는 이제 조금씩 낮추어보자.
미국인, 프랑스인, 일본인, 타이완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느끼지 않는가?
잘 산다는 그들이지만 조용하고 순하지 않은가?
서로가 신뢰하며 순한 환경 속에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나갈 때 진정한 경쟁력과 능력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우리는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

작지만 단아한 삶이 가능하다면, 등수가 무슨 상관이 있으며 삶의 규모와 크기가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이겠는가?
무역의 규모와 올림픽, 아시안 게임에서의 금메달 집계는 이제 그만 해도 될 때가 되었다.

금메달 한두 개로 일본을 젖혔다고 매스컴에서 떠들어본들 그게 우리들 삶에 어떤 의미가 잇는가?
몇 사람 죽어라고 몰아쳐서 만들어내는 금메달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이제 그런 우스꽝스런 모습을 버리자.
우리보다는 등수가 떨어지지만 은메달, 동메달이 그득한 다른 나라들의 사회와 개인들의 삶의 질을 떠올려보자.
동네마다 있는 수영장과 안전한 자전거 도로 그리고 공원과 놀이터.

이젠 서로를 더 이상 속이지 말자.

이제는 더 이상 탐욕과 질투 그리고 권력욕에 의해 움직이는 거대한 국가적 횡포와 정치적 속임수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작지만 소중한 우리들 스스로의 삶과 주변 환경을 돌볼 시대가 되었다.
왜곡된 역사 속의 엑스트라에서 벗어나 삶의 무대의 주역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

유교 문화가 낳은 왜곡된 정치적, 사회적 권위에 빼앗긴 인간다움을 되찾고 싶고, 칙칙해진 내 마음의 창을 맑게 닦으며 살고 싶다.
그 창으로 이웃들의 따스한 가슴을 들여다보며 살고 싶다. 작지만 아름다운 삶을 가꾸면서.




종아리를 걷어라.


세계가 급변하고 있다.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 젊은 아이들의 가치관이 무섭게 달라지고 있다. 그런데 이 사회의 지적 능력은 예측은커녕 변화에도 넉넉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을 포용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자리를 깔아줄 아량과 비전이 없다. 굵고 생명력 있는 시대정신이 없다.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지금은 정녕 난세다. 바위 틈새로 솟아나는 맑은 샘물 같은 시대정신이 국민들의 가슴을 적시지 못하고 있는 지금은 심각한 난세다. 우리는 말라비틀어져서 썩은 물에 둥둥 떠 내려가고 있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 국민은 지도자를 보고 배운다. 집안이 되려면 진실한 부모가 있어야 한다. 부모가 열심히 일하고 차분하게 쉬면 아이들이 다소곳해진다. 나라가 되려면 지도자들이 진실해야 한다. 지도자들이 잔머릴 안 굴리면 국민들이 순해진다. 지도자들이 필요한 일들을 미리미리 해놓으면 국민들이 단잠을 잘 수 있다.

선생님이 학부모 돈 가방 눈치를 보니 애들이 보고 배운다.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내 돈이다. 자기도 돈 받는 주제에 누굴 훈계해? 우리 같은 월급쟁이들은 들여다도 못 볼 노라리판에서 제 딸네미 같은 애들 젖가슴을 주무르니 젊은애들도 배운다. 말이야 누가 못하나?

교수라는 지식인들이 강의시간 10분씩을 예사로 잘라먹으니 거기서 보고 배운 애들이 철근도 10센티미터 잘라먹고 시멘트도 10퍼센트 떼먹는 것 아닌가? 그러니 안 무너지고 배기나?



할 말을 해라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바뀐 시대에는 바뀐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한국 사회에서 ‘침묵하는 다수’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를 진압할 때마다 독재권력들은 언제나 ‘침묵하는 다수’를 애용하며 시위대를 잠재워왔다.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에 우리는 ‘민주’를 얻어냈고 더 이상의 항의는 필요치 않게 되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이야말로 침묵을 깨고 진정한 발언을 할 때가 되었다. 이제 ‘침묵하는 다수’는 역사와 문화의 대변혁을 맞으면서 ‘도태되는 다수’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면 침묵은 어떻게 깨야 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경쟁력을 잃은 국가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맹목적 국가주의는 이제 거의 설득력을 잃었다. 단군의 자손 똘똘 뭉치자는 쇼비니즘적인 맹목적 민족주의도 개인의 삶과 따듯한 가정을 보호하는 데에는 모두 걸림돌일 뿐이다. 남북 통일만이 이 민족을 새로운 도약으로 이끌 것이라는 차분하지 않은 구호도 영양가가 그다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오랜 동안 침묵해왔다. 조선의 길고 긴 500년 동안 글과 권력을 가진 몇몇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한 한일합방, 그건 일종의 국가적 강간이었다. 그리고 35년 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상징적인 말이 아닌 성대가 만드는 한국어의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것은 침묵을 넘어선 마비의 강요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해방. 그때 해본 소리라고는 단 여섯 자였다.

‘대한독립만세’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말을 배우지 못한 아버지 세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말에 익숙했던 몇몇이 다시 정권을 잡고 말았다. 그들은 조선시대 내내 이어온 유교의 언어에도 익숙했고, 분석과 장사에 잘 맞는 일본어에도 익숙했다. ‘김치’ ‘된장’ ‘설렁탕’밖에 못하는 아버지 세대는 ‘국제’ ‘경제 협력’ ‘증권’ ‘무역’ 어쩌구 하며 사람들이 하는 말을 멍하게 들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망나니 춤들을 멀거니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6.25, 비명 소리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 이때는 아무런 말이 필요 없던 시대였다. 배고픈 우리들에게는 한 소절의 노래들이 배급되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우리는 노래하고 일하고, 일하고 노래했다. 말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몇 마디 말을 빨리 배운 사람들은 ‘우연한 사고사’를 당했다. 그리고 닥친 1980년대. 그것은 참으로 길고 긴 침묵의 기간이었다. 그 침묵은 그들이 해석하듯이 ‘안정’을 희구해서가 아니라 겁이 나서였다.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열린 1990년대, 말을 해도 된다는 윤허가 떨어졌다. 조선시대 500년을 합하면, 근 590년 만의 윤허였다.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민주주의는 떠들면 된다니까 마구 떠들어보았다. 자본주의는 돈 놓고 돈 먹기니까 은행돈 끌어다 벌고, 갚아가면 된다고 떠들어댔다. 자기 자본 몇천 퍼센트의 이자 돈을 끌어다 너도 먹고 나도 먹고 같이 먹었다. 어차피 국민들이야 말을 못하는 부류 아닌가?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김치’ ‘된장’ ‘설렁탕’이 전부 아닌가?

언론? 기자의 말인지 청와대 대변인의 말인지 구별할 수 없던 글과 말. 그것만으로 판단의 근거를 삼기에는 너무 위험한 삶의 투자 아닐까? 청와대 대변인이 우리들의 행로를 명확하게 인도해줄 수 있을까? 그들은 정말 과거를 명확히 이해하고, 현재를 정확히 분석하며, 미래를 명쾌하게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일까? 중고등학교 내내 교과서와 참고서 외에는 본 일이 없고, 대학 내내 미팅과 영어책 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기자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혜안이 생길까? 통찰력이 생길까? 설사 생겼다면 용기는 있을까? 매일 끼리끼리 모여서 잡담이나 나누다가 같은 장소에 우웅 몰려가서 대충 사진 찍고, 사우나 갔다가 늦게 와서 남의 취재 노트 베껴다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사람들에게서 용기를 기대하는 일은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닐까? ‘모 인사의’ ‘묘한 기류’ 따위로 ‘진실’을 보도하는 글들을 계속 돈 내고 보아야 할까? 우리 사회가 말을 잃어버린 데에는 그래서 언론의 책임이 크다.

오랜 ‘언어 침묵’은 어법을 상실하게 만든다. 말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외마디 소리밖에 지르지 못한다. 외마디 소리와 외마디 소리가 부딪치는 현상이 바로 싸움이다. 유달리 싸움이 많은 한국사회, 동대문을 가도 남대문을 가도 싸움이 흔한 사회. 그건 우리가 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목소리 큰놈이 이긴다’는 이제 자조의 표현을 넘어 격언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이제 말을 해야 한다. 자신을 감추고 진실을 감춘 왜곡된 ‘목소리’가 아닌 자기 스스로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도, 인물도, 사건도 모두 진실을 바탕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 들어주어야 한다. 진실에 기초한 말은 대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대화는 타협을 초청할 것이며 타협은 발전된 해결책을 가져다줄 것이다.



황장엽처럼 들이닥칠 통일이 두렵다.

사람들 중에는 독일 통일을 들어 한반도 통일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

독일은 1964년 스포츠 교류를 시작으로 지속적인 교류를 했다. 종교단체, 청소년 교류, 60세 이상 연금수혜자들의 왕래 등을 통해 나름의 토대를 다진 후 흡수 통일을 단행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독일의 흡수통일은 동서독 국민들을 1등, 2등 국민으로 만들게 되면서 새로운 장벽을 만들고 말았다. 때문에 2등 국민으로 떨어진 동독인들의 좌절감은 현재 새로운 파시즘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동독을 복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처음의 계산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통일을 이루어낸 콜 수상은 당초 연간 500억 마르크식 투자하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 상황으로 보면 해마다 2,000억 마르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독일 경제 전체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증가하고 있는 동독 출신 실업자들의 문제 역시 통일을 서두르는 우리들에게는 좋은 교훈이 된다.

더구나 독일은 준비의 과정이 길었고, 합리적인 민족이다. 또 중국은 땅이 넓다. 일부의 문제가 급속하게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기 전에 대비책을 찾을 수도 있고 적당히 희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남과 북을 보라. 달팽이 위의 두 더듬이처럼 바짝 붙어 있지 않은가? 어느 한구석 문제가 불거지면 바로 전체로 확산되고 말 것이다.

연변의 조선족을 포용하는 데 실패했던 우리들이 이번에는 금강산으로 가고 있다. 금강산에는 선녀가 살고 있다. 연변이나 동북 조선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한 주민들은 더욱더 ‘자연 보호’된 상태의 사람들이다. 선녀로 살고 있다.

통일이라는 추상 명사는 어느 날 갑자기 구체적인 사실이 되어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마치 황장엽처럼. 우리가 동포라고 맞닥Em리게 될 사람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연 보호가 아니 ‘사상 보호’된 사람들이다. 그들을 우리는 잘 포용할 수 있을 것인가?

1997년도 ‘북한 인권 백서’를 보면, 북한에서는 입당과 취업을 미끼로 여성에 대한 강간이나 성폭행이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직장 내에서의 성희롱도 ‘일상적’이며 문제의식조차 없다고 밝히고 있다. 연변을 싸구려 유흥가로 만들어버린 한국 관광객들의 졸부 근성과 ‘처녀아들이 모두 도시로, 남한으로 복무질하러 가버린’데 대한 불만, 연변 청년들의 ‘칼로 베고 싶은’ 충동들을 목격하면서 걱정은 더욱 쌓여만 간다.

조선족들의 정서와 우리 국민들의 태도, 그리고 정부의 조치들을 보면서 나는 통일 후의 갈등을 감지해본다. 북의 동포들은 크게 당황할 것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조선족들이 알고 있는 ‘력사’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물며 수십 년 동안 김일성, 사회주의 전쟁 외에는 다른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던 그들이 확신하고 있는 ‘력사’는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도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들은 땅투기, 뒷거래, 입시 경쟁, 외국 여행, 인터넷 등 긴장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체득한 우리들과 악수를 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관연 그들의 무지를 인내하고 교육할 아량과 능력이 있을까? 내가 아는 남쪽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통일 후 있게 될 남남북녀의 갈등과 충돌이 눈앞에 선하다. 과학 기술과 생산 기술의 차이로 북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단순 노동직으로 전락할 가능성,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등 역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 나닐 수 없다.

너무 급작스럽게 갖다붙이는 정치적 모자이크가 모두에게 행복한 것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정치적 경제적 아픔을 다 겪은 우리들이 아직도 시련이 부족해서 더 겪어야 할 항목이 있다면 그것은 환경 문제와 통일 실험이지 싶다. 그 중에서도 냉전의 최전방에서 살고 있고 냉전 논리에 최후까지 묶여 있는 우리들이기에 겪게 될지 모르는 통일 실험은 함부로 다룰 일이 아니다.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나, 민족 통합을 갈망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잇다. 하지만, 그 동안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에 억눌려 있던 삶의 욕구들이 일순간 수면 위로 터져 나올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없는 상황은 억눌려 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그 분출도 거칠 수밖에 없음을 생각할 때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우리 앞에는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 중에서도 통일은 예측 못할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통일이란 단순한 정치적 게임이어서는 안 된다. 통일 비용만큼 중요한 것은 북의 동포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지적 문화적 성숙함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아량과 이해가 먼저 생겨나야 통일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다가올 어려움과 부담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국민들에게 알려 대비토록 해야 한다. 때가 된 듯하다.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언제나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했던 사건들 때문에 곤두박질치곤 했다. 그리곤 한동안씩 뒷걸음질이었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황장엽처럼 들이닥칠 통일이 걱정된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느라고 바쁜 정치를 보면 더욱 그렇다.

서양이 동양을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물질적 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을 사랑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휴머니즘과 합리주의적인 정신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동양의 지성인들이 서구의 정신들을 만나면서 미련 없이 유교를 내던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반도의 21세기는 통일로 열어야 한다. 그러나 그 통일은 정치로 열려서는 안 된다. 더구나 정권의 ‘업적’을 위해 만들어져서도 안 된다. 물론 민족적 열망의 한탕 잔치로만 열려서도 안 된다. 그것은 더불어 살아야 하고 함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가야 한다는 인간 중심의 생각으로 열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사람이 살아 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서의 통일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