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미국 육군사관학교는 매년 4월 초가 되면
미국 내 다른 사관학교나 ROTC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사관생도들로 북적댄다.

이들은 이틀간 실전과 같은 다양한 상황을 부여 받고 이 상황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발휘하며
어느 나라의 어떤 사관학교가 세계 최고인지 치열한 승부를 벌인다.
바로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샌드허스트 대회(International Sandhurst Competition)이다.

일반인들이 듣기에 생소한 이 대회에 지난 2013년부터 참가했던 우리나라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대회 참가 두 번 만에 중상위권 성적까지 무섭게 치고 올라오며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올랐다는 소식이다.

정말일까?

첫 대회 참가 성적... 58개 팀 중 52위

샌드허스트 대회는 원래 국제대회가 아니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 미 육사에 파견 근무 중이던 영국 육군 장교의 제안으로 미 육사 생도들의 체력과 소부대 전투기술을 평가하기 위한 경연대회로 시작된 것이 바로 샌드허스트 대회였다.

대회의 이름이 미 육사의 별칭인 웨스트포인트(West point)가 아니라 영국 육군사관학교를 의미하는 샌드허스트(Sandhurst)인 것은 처음
이 대회를 제안한 영국 육군 장교가 대회 우승 상품으로 내걸었던 것이 영국육군 장교용 군도(Officer's Sword)였기 때문이다.

이 대회는 미 해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 그리고 각 대학의 ROTC가 참가하기 시작하면서 규모가 커졌고,
1994년에는 외국의 사관생도들의 참가가 허용되면서 지금과 같은 ‘사관생도 올림픽’이 되었다.



↑ 2016년 대회에서 우승한 캐나다 육사 생도들이 우승부상인 장교용 군도를 들어보이고 있다.


매년 10여개 국가에서 1000여 명의 생도들이 참가하는 이 대회는 실전에서 필요한 다양한 기량들을 평가한다.
9명으로 1개 분대를 구성(여성 생도 1명 포함 필수)해 실시되는 평가 항목은 개인화기와 공용화기 등 사격술과 체력, 수류탄 투척, 응급처치 및 부상자 수송, 전술통신과 화력지원요청, 군용차량 조작과 같은 전투 기술부터 교전 중 발생할 수 있는 국제법적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 등 대단히 광범위하다.

평가는 개개인에게 대단히 높은 수준의 체력과 숙련된 전투기술을 요구하며, 특히 팀 단위로 평가를 받기 때문에 고도의 팀워크도 필수다.

주최 측인 미 육사는 연평균 30개 팀을, 미 해사와 공사, 해안경비대 사관학교와 ROTC는 연평균 20여 개 팀을 참가시킨다.
해외팀으로는 우리나라와 함께 영국, 캐나다, 칠레, 중국, 멕시코, 독일, 라트비아, 오스트레일리아, 터키, 일본 등 11개 팀이 참가했다.

1994년 해외 생도들이 참가한 이후 우승은 앵글로색슨의 독무대였다.
매년 2개 팀을 출전시키는 영국 육군사관학교가 무려 16차례나 우승하며 세계 최강을 자부하고 있고,
그 뒤를 미국 육군사관학교, 호주, 캐나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뒤쫓고 있다.

우리나라의 육사는 지난 2013년부터 이 대회에 참가했다. 첫 대회 참가 성적은 58개 팀 가운데 52위.
육사는 국내 최고의 엘리트 장교 양성 기관임을 자부했지만 세계적인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군대 교육 시스템은 국가안보와 직결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조사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학원 수업과 고액 고외를 받는 고소득층 자녀의 명문대 진학률이 과외 수업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대비 9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 그대로 공교육의 붕괴다.

사회에서의 교육 시스템의 붕괴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를 낳는 사회 문제가 되지만, 군대에서의 교육 시스템의 붕괴는 국가 안보의 위기를 낳는다.
문제는 샌드허스트 경연대회를 통해 우리 군 장교 양성 교육 시스템의 심각한 문제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육사 생도에게는 3인 2실(침실+학습실)의 쾌적한 생활공간 외에도 양질의 피복과 급식, 부식이 제공되며 노트북을 비롯한 다양한 교보재가 지원될 뿐만 아니라 품위유지비로 월 40만 원 이상의 급여가 지급된다.

학기 중에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국내외 명문대에서 위탁 교육을 받은 최고의 교수진으로부터 학과 교육을, 방학 중에는 자체 훈련시설과 특수전교육단, 과학화훈련장(KCTC) 등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이렇게 육군사관학교가 1명의 사관생도를 소위로 양성하는데 쓰는 돈은 무려 2억 4000만원이 넘는다.
ROTC 후보생의 20배, 3사관학교 생도의 4배를 상회하는 비용이다.

많은 예산과 시간이 투자된 만큼 육사 생도는 여러 장교 양성 과정의 교육생 가운데 최고의 엘리트로 평가된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예산과 시간이 들어간 생도들조차도 외국 사관생도들과의 경쟁에서 낮은 성적을 받았다면 대한민국 초급장교들의 전체적인 질적 수준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한국군은 UN 평화유지군 경험이 꽤 풍부한 편이지만, 실전 경험은 거의 없다.
교전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지역만 골라서 파병하며, 교전이 발생해 부상자라도 발생하면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때문에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현지 지휘관들이 개입을 극도로 회피하기 때문이다.
실전 경험이 없으니 실전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고, 동맹국이나 우방국의 실전 사례를 접하더라도 이를 교리 수정에 반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는 것이 한국군이다.

가령, 총기에 부착하는 각종 부가장비가 발달하고, 시가전과 산악전에서 전투 환경이 바뀜에 따라 총기 멜빵 휴대법이나 사격할 때 총을 잡는 자세인 파지법, 그리고 사격술 역시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그러나 한국군은 일명 ‘멀가중(멀리, 가까운, 중간) 멀가중 멀중가중’과 ‘엎무안(엎드려 쏴, 무릎쏴, 앉아 쏴)’만 가르치고 있다. 물론 탄피 분실과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 때문에 움직이면서 실탄을 사격하는 이동 간 사격은 꿈도 꿀 수 없다.



↑ 주한미군 장교들에게 특훈을 받고 있는 육사 생도들.


이러한 교육 환경에서 육성된 육사 생도들은 2013년 샌드허스트 대회에서 58개팀 가운데 52위라는 충격적인 성적으로 돌아왔다.
특히 사격에서는 일반 대학 ROTC팀에게조차 큰 점수 차로 밀리며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육사는 2014년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좋은 성적을 기약하기 위해 한 해를 건너 뛰면서까지 절치부심 준비한 것이다.

국제대회에서 이 같은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면 군 전체적으로 대대적인 교육훈련 시스템의 변화가 있어야했지만, 이 같은 변화는 육사 내에서만 있었다.
육사는 샌드허스트 대회를 벤치마킹해 화랑 전투기술 경연대회를 신설해 생도들의 교육훈련 체계를 강화하고, 주한미군 제1기갑여단과 제2보병사단의 협조를 받아 대회 참가팀에 대한 훈련을 받게 했다.

주한미군 장교들 가운데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샌드허스트 대회 참가 경험이 있는 장교들을 멘토로 선발해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Camp Casey)에서 집중 훈련을 실시한 결과, 2015년 대회에서 육사팀은 종합 12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돌아왔다.

이 성적에 고무된 육사는 올해에도 주한미군에게 훈련을 받게 했다.
올해 2월 아예 한미연합사단과 훈련 협력관계 확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연합사단 내 미군 장병 가운데 샌드허스트 참가 경험이 있는 장병들을 선발해 육사의 대회 참가팀의 훈련을 맡긴 것이다.
올해 4일 간 실시된 훈련을 거쳐 육사팀은 13위의 성적을 거뒀다.


행정군대가 된 한국군 전체의 문제

각국이 샌드허스트 대회에 생도팀을 파견하는 것은 생도들 간의 경쟁을 통해 생도들 개개인의 성취욕을 자극, 체력과 전술적 기량을 향상시키고, 각국의 각기 다른 전술과 최신 전훈(戰訓)을 교류하여 자신들의 전술과 교리 발전을 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육사는 대회 참가용 팀을 따로 선발해서 그 팀만 별도의 교육훈련을 시켜 대회에 참가시키고 있다.
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생도들이 체득한 귀중한 교훈들이 육사를 벗어나 육군의 교육 시스템 변화에 반영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2015년 대회 12위 기록 후 육사 내부에서는 결과 보고와 학술지 기고 등을 통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종목을 집중적으로 준비하고, 취약한 분야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2016년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대회를 통해 체득한 교훈을 우리 군의 교육훈련 시스템 변화를 위해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미비했다.
이 대회를 단지 ‘등수놀이’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단순히 육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도들이 국제대회를 통해 값진 교훈을 가지고 돌아오더라도 이미 행정군대가 된 한국군이 생도들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교리 발전에 적용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미군 장교들은 매년 반복되는 한미연합훈련에서 한국군의 행태를 보며 혀를 찬다.

훈련을 통해 전술적 기량을 향상시킬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안전사고 없이 훈련을 마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평가관이나 통제관의 마음에 들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훈련에서 한국군의 최대 고민거리는 ‘안전’이다. 어떤 훈련을 해도 인원과 장비의 손상이 없어야 문책도 없고, 진급에도 불이익이 없다.
이 때문에 사격훈련은 정해진 자리에서 엎드리거나 앉거나 서서 부사수와 안전통제관의 통제 하에 소총에 탄피받이를 부착하고 한발 한발 쏴야 한다.
전술 훈련에서 공포탄을 이용해 사격을 할 때 앞에 있는 표적보다 자신의 발아래 떨어지는 탄피가 다른 곳으로 굴러가지 않을지 더 신경 써야 한다.



↑ 몸을 드러낸 채 조종하는 한국군 흑표전차 조종수(왼쪽)와 밀폐조종하는 미군 M1A1 전차 조종수.


장비를 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무사고 00만 시간을 자랑하는 전투기나 헬기 부대가 많은 것은 기상이 좋지 않으면 그날 비행 스케줄 자체를 취소해 버리기 때문이다.
전차나 장갑차는 적진으로 돌격할 때 적의 빗발치는 총탄으로부터 인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지만, 한국군은 혹시라도 안전사고가 발생할까봐 조종수와 차장 등 승무원들이 차체 밖으로 상반신을 내놓고 차량을 조종한다.
장갑차량을 타는 의미를 무색케 하는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교육훈련 시스템에서는 ‘한국군 최고의 엘리트’라고 평가되는 육사 생도들조차도 세계적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집단이 될 수밖에 없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주한미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때그때 대회를 위해 대회 참가팀에게만 이루어지는 이러한 과외는 한국군 전체의 전투력 향상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국제무대에서 현재의 한국군 교육훈련 시스템의 문제가 드러났다면, 참가팀만 따로 특훈을 받는 대신 행정을 위한 군대가 되어버린 우리 군의 현 실태에 대한 문제 인식을 가지고 개혁을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그래야만 육군이 매일 아침 점호 때마다 외치는 복무신조 “우리는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지상전의 승리자가 된다”가 거짓말이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일우 군사전문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finmil@nate.com